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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영동리고분 발굴조사-지도위원회 회의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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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작성일 2006-01-26 조회2,132회

    본문

    나주 영동리고분 발굴조사
    지도위원회 회의자료


    □ 유 적 명 : 나주 영동리고분군
    □ 소 재 지 : 나주시 다시면 영동리 813번지 일대
    □ 조사기간 : 2005년 12월 13일 ~ 2006년 2월 12일
    □ 조사기관 : 동신대학교 문화박물관
    □ 조사목적
    2005년 3월 주민이 밭 경작을 위해 개간하던 중 석실과 인골이 노출됨에 따라 동신대학교 문화박물관에서 긴급 수습조사를 시행하였다. 조사결과, 소형의 석곽묘 1기와 옹관묘 1기, 분구의 잔존상태를 확인하였다. 그러나 대학박물관 자체적으로 마련된 조사경비의 한계로 인해 분구의 규모나 형태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문화재청과 전라남도, 그리고 나주시의 지원을 받아 이번에 제2차 발굴조사를 시행하게 되었다.
    □ 유적내용
    이 유적에서는 고분 7기가 확인되었다. 그 중 제1호분에서는 옹관묘 2기, 석실묘 4기, 석곽묘 1기가 확인되고 있으며 제3호분에서는 석실묘 1기, 제4호분에서는 옹관 묘 수기가 확인되고 있다. 현재는 제1호분 1~3호 석실묘, 제4호분의 옹관묘를 조사하고 있으며 제1호분 4호 석실묘는 석실 입구의 틈을 통해 초소형카메라를 삽입, 내부를 관측하였다.
    1) 제1호분
    전체 분구의 1/2정도가 경작으로 인해 훼손되었으나 잔존부분에서 옹관묘 2기와 석실묘 4기, 석곽묘 1기를 확인하였다. 한편 고분의 범위가 계획된 조사구역 밖으로 확장되는데, 석실부재로 추정되는 석재편이 확인되어 2기 정도의 석실이 더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분구의 잔존규모는 현재 동-서 11m, 남-북 15m이나 원래 분구의 규모는 약 20m 내외의 장방형 또는 제형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제1호옹관
    2005년도 긴급 수습조사를 통해 옹관1기(제1호옹관)와 부장된 토기호 등을 수습하였다. 석곽묘의 서쪽 단벽에 인접하여 확인되었는데 옹관은 노출 당시 윗면이 훼손되어 있었다. 또한 소옹은 밭 경작시 설치된 배수로 인해 파괴되어 아가리와 몸체 상단 일부만 남아있었으며 대옹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대옹은 남쪽을, 소옹은 북쪽을 향하게 한 채 합구하였다. 합구부는 소옹을 대옹 안쪽으로 약 20cm 정도 밀어 넣은 후 회색점토(뻘흙)를 발라 마감하였다. 옹관의 형태는 구연이 약간 벌어지고 동체에서 다시 벌어졌다가 점차 좁아들어 저부에 이르며, 구연과 동체의 꺾이는 부분에 거치문이 시문된 4세기대의 이른 시기 옹관이다. 잔존하는 전체 길이는 130cm이며 장축방향은 남-북이다. 옹관 내부에는 적갈색의 사질점토가 채워져 있었다. 출토유물은 대옹바닥의 중앙부에서 북쪽으로 약간 치우쳐 양이부호 1점이 출토되었다.
    ● 제2호 옹관묘
    대부분 파괴된 채 제2호 석실묘의 내벽방향 상부에서 확인된다. 제2호 석실묘를 축조하는 도중 파괴된 것으로 판단된다.옹관은 제1호 옹관묘와 동일한 형식이다.
    ● 제1호 석실묘
    경작으로 인해 석실 상부가 훼손되었으며 석실 하부와 바닥부분만 남아있다. 석실의 장축방향은 남-북이며 크기는 장벽 360cm 단벽 230cm이다. 바닥은 3~5cm 정도의 자갈을 전면에 깔아 놓은 후 회백색점토(뻘흙)를 발라 마감처리하였다. 석실내부에서는 토기장군을 비롯하여 배부병, 개배, 고배 등 30여점의 토기를 확인하였다. 또한 철제대도 1점을 비롯하여 철제화살촉, 철제관못 등 다수의 철기를 확인하였다. 또한 석실 중앙부분에서는 인골편과 치아를 확인하였다. 이 석실묘는 잔존하는 벽석의 크기나 형태가 제2~4호분과 달리 소형이고 가공도가 훨씬 거친 할석을 사용한 점 등으로 보아 5세기말~6세기 전반의 영산강유역 초기 횡혈식석실묘로 추정된다.
    ● 제2호 석실묘
    제1호 석실묘에서 서쪽으로 약 2m정도 거리를 두고 축조되었다. 벽석은 길이 30 ~ 60cm 정도의 장대석을 사용하여 8단 정도 가로 쌓기하였다. 내벽은 1매의 판석을 사용하였으며 입구는 양장벽 끝에 문주석을 세운 후 장대형의 문미석을 얹었다. 바닥은 부정형의 얇은 판석을 전면에 깔았다. 천정은 대형 판석 2매를 이용하였으며 천정석 사이에는 회백색점토(뻘흙)를 두텁게 발라 마감하였다. 현실은 양 장벽을 수직으로 쌓다가 중상부에서 안쪽으로 좁히며 올라가는 구조이다. 석실의 크기는 길이 205cm, 천정부분너비 78cm, 바닥부분너비 100cm, 높이 81cm이고 형태는 장방형이다.
    석실 내부에서는 인골 4구가 확인되었다. 2구의 두개골은 북벽에 나란히 놓여있으며 1구의 두개골은 서벽에 붙어 깨어진 상태로 확인된다. 나머지 1구의 두개골은 석실 입구에서 확인된다. 인골의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여 전체의 골격 복원도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 제3호 석실묘
    제2호 석실묘 바로 곁에 인접하여 축조되었다. 석실구조는 제2호석실묘와 거의 동일하다. 벽석은 길이 30~60cm정도의 장대석을 8단 정도 쌓아 축조하였다. 내벽은 1매의 판석을 사용하였으며 입구는 양장벽 끝에 문주석을 세운 후 장대형의 문미석을 얹었다. 천정석은 판석 3매를 사용하였으며 천정석 사이의 틈새는 회백색점토(뻘흙)를 두텁게 발라 밀폐하였다. 현실은 양 장벽을 수직으로 쌓다가 중상부에서 안쪽으로 좁히며 올라간다. 바닥은 흙이 쌓여 있어 자세히 확인할 수 없다.
    석실내부에서는 인골 2구가 확인된다. 1구의 두개골은 북벽에 놓여있으며 나머지1구는 석실 입구 우측에서 깨어진 상태로 확인된다.
    ● 제4호 석실묘
    아직 내부조사가 시행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확인할 수 없으나 초소형카메라를 삽입하여 관찰한 결과 양장벽은 판석을 사용하여 세운 후 상부에 장대석 수매로 좁혀 쌓은 것으로 확인된다. 내벽은 1매의 판석을 사용하였다. 석실벽 안쪽에는 장벽석 일부가 넘어져 바닥에 누워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바닥에는 인골이 확인된다. 석실 입구의 문비석이 약간 벌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 부분적으로 교란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 제1호 석곽묘
    2005년 긴급 수습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소형으로 고분의 최상부에 위치한다. 석실 내부의 크기는 장축 168cm, 단축 78cm, 깊이 50cm이며 장축방향은 동-서이다. 양 장벽은 먼저 하단 1단을 3매의 판석으로 세로놓기를 한 후 2단부터는 가로쌓기로 축조하였다. 그리고 벽석 상단부를 점차 안쪽으로 기울게 하여 뚜껑돌을 놓았다. 단벽은 동쪽 단벽의 경우 하단에 1매의 판석을 세로 놓기하였고 2단부터는 할석으로 가로 쌓기를 하였다. 북쪽 장벽과 연결되는 부분은 2단부터 모줄임하였으며 상단으로 올라 갈수록 점차 깊이 내경하게 하였다. 서쪽 단벽은 전체를 1매의 판석으로 세로놓기한 후 2단부터는 대형 할석 2매를 가로쌓기하면서 폐쇄석 형태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벽석 사이는 회백색 점토(뻘흙)로 막음처리를 하였다. 뚜껑돌은 4매의 판석형 할석으로 구성하였다. 석실 바닥 전체에 강자갈을 깔았으며 부분적으로 회백색 점토(뻘흙)를 바른 부분이 확인된다. 바닥 위에는 동쪽 단벽에 치우쳐서 인골은 2구가 나란히 놓여 있었으며 서쪽 단벽에 인접해서는 소옥 다수가 출토되었다.
    ● 기타
    분구 정상부의 단애면에 와형토기가 노출되어 있다. 잔존형태로 보아 복암리고분에서 출토된 화장인골을 안치한 와관(瓦棺)과 동일하다.
    2) 제2호분
    경작으로 인해 대부분 삭평되고 주구흔적만 일부 확인된다. 매장주체부인 옹관이 상부가 훼손된 채 확인되고 있다.
    3) 제3호분
    경작으로 인해 분구 대부분이 삭평되고 현재는 분구의 하부와 훼손된 석실묘 1기, 그리고 주구흔적이 관찰되고 있다.
    ● 석실묘
    내부조사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분구가 훼손되면서 석실 상부도 없어졌으나 노출상태로 보아 석실 하부의 일부와 바닥면이 남아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 주구
    일부이기는 하나 주구의 노출상태로 보아 방형 또는 말각방형의 주구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4) 제4호분
    경작으로 인해 분구의 3/4정도가 훼손되고 일부만 남아있다. 내부조사를 진행중인데 현재까지 옹관 수 기와 분구 주변에서 주구의 흔적이 일부 확인된다.
    5) 제5~7호분
    경작으로 인해 거의 삭평되고 분구의 저변과 옹관편, 주구흔적만 일부 확인되고 있다.
    □ 현재까지의 조사성과
    1) 이번 조사에서 밀집된 7기의 고분을 확인하였다. 이들 고분은 대부분 경작으로 인해 훼손되었지만, 제1 · 3 · 4호분은 매장주체부가 잔존하여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1호분에서는 옹관묘와 횡혈식석실묘, 석곽묘를 확인하였으며 제3호분에서는 횡혈식석실묘, 제4호분에서는 옹관묘를 확인하였다. 특히 제1호분은 4세기대의 옹관묘와 5~6세기대의 횡혈식석실분이 함께 매장된 바, 복암리고분(사적 제404호)에 비해 규모는 작으나 형태가 동일한 복합묘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담당자 : 발굴조사과 배성규
    연락처 : 481-4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