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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김해박물관]우리나라 최고의 배〔木舟〕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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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작성일 2005-09-06 조회1,919회

    본문

    국립김해박물관(관장 김정완)에서는 창녕 부곡에 위치한 신석기시대의 저습지 및 패총(조개더미) 유적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나무 배〔木舟〕를 확인하여 신석기시대의 생활사 연구는 물론 고선박(古船舶) 연구의 획기적인 자료를 확보하였다.

     국립김해박물관은 창녕군의 의뢰를 받아 2004년 11월 30일부터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에 소재하고 있는 신석기시대의 저습지와 패총 유적을 조사하고 있다. 올해 4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그 동안의 발굴조사 성과를 발표한 바와 같이 이 유적에서는 우리나라 신석기 연구 사상 중요한 여러 가지 자료를 쏟아낸 바 있다. 신석기시대 최초의 저습지 유적, 물가를 따라 열을 지은 대규모의 도토리 저장시설, 양호한 층위에 의한 남해안 신석기시대 토기편년자료, 도토리와 가래, 솔방울과 각종 씨앗류 등 신석기시대의 구체적인 먹을거리 자료, 우리나라 최고의 망태기와 목기(木器), 가장 오래된 그림인 토기에 선각(線刻)된 멧돼지 그림, 고고학상 최초의 분석(糞石 : 사람이나 동물의 배설물이 굳어 화석처럼 된 것) 등 최초, 최고의 수식어가 붙은 자료만 해도 엄청나다.

    ■ 배의 출토 상황 및 특징
     발굴조사 구역의 제2피트 제5패층 아래에서 출토되었다. 이 제5패층은 비봉리 유적의 가장 아래층으로서 지금까지 조사에서 밝혀진 바로는 신석기시대의 조기(早期) 혹은 초창기(草創期)에 해당하는 층위이며, 배가 출토된 곳은 현 해수면보다 2.0m 가량 낮은 곳이다.
     배는 동서 방향으로 놓여져 있으며, 강쪽인 남쪽으로 약간 기울어져서 출토되었다. 남아 있는 최대 길이 3m10㎝, 최대폭 60㎝, 두께 2.0~5.0㎝, 깊이 약 20㎝이다. 선수부(船首部)와 선미부(船尾部)를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좁아지고 있는 동쪽 부분이 선수부로 추정된다. 최대폭을 보이는 부분은 선미부분으로 선수부를 향해 차츰 좁아진다. 선미부 일부는 훼손되어 다 남아 있지 않으며, 일부분은 선체(船體) 방향으로 파손되어 약간씩 겹쳐져 있다. 깊이도 선미부분이 가장 깊은 것으로 추정된다. 단면(斷面)은 U자상으로 통나무를 파내어 만든 소위 환목주(丸木舟)이다. 전체가 균일하게 가공되어져 있으나 선수부가 약간 더 두껍다.
     추정 선미부의 상태를 감안하면 원래의 선체는 4m를 넘을 것으로 보여 대단히 세장한 편이다. 군데군데에 제작시에 불에 태워 가공의 효율성을 높인 것으로 보이는 초흔(焦痕 : 불에 그을려 가공한 흔적)이 관찰되기도 한다. 이것은 통나무를 그을려 석기로 깎기한 흔적으로, 돌자귀로 깎기한 후에 이를 다시 마석(磨石) 등으로 조정하는 일반적인 공정을 거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배의 재료는 소나무로 밝혀졌다.

    ■ 출토 의의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배로는 안압지 배(8세기), 완도선과 십이동파도선(11세기), 안좌도선(13~14세기), 달리도선(14세기) 등으로 모두 역사시대의 것이다. 비봉리 배는 선사시대의 배로는 최초의 것이며, 아직 과학적인 연대 측정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연대도 고고학적인 층위로 보아 지금부터 약 8,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배로 알려진 도리하마〔鳥浜〕1호나 이키리키〔伊木力〕유적 출토품 보다도 약 2,000년 이상 앞서는 것이다.

    ■ 계획 및 현안
     창녕군과 발굴단에서는 이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유적의 보존 방안을 협의 중에 있으며, 극히 일부분만 발굴조사한 상황이므로 유적의 추가 발굴을 위하여 국비지원을 신청해 놓은 상태이다. 이 유적 일대는 지난 2003년 ‘매미’태풍 때 완전 침수된 지역으로, 양배수장의 건설도 시급한 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