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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익산 제석사지 발굴조사 시작 (07.8.30~ )

    페이지 정보

    작성일작성일 2007-09-04 조회1,500회

    본문

    익산 제석사지(사적 제405호) 가람의 문을 열다

    - 익산 제석사지 드디어 본격 발굴 시작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익산 제석사지(사적 제 405호)에 대한 발굴조사 개토제를 2007년 8월 30일 오전 11시에 개최한다.

    제석사지는 『觀世音應驗記』에 의하면 정관(貞觀) 13년(639년)에 세워져, 같은 해에 뇌우로 인하여 불당(佛堂)과 낭방(廊房) 등이 모두 불탔다는 기록이 있어서 백제 제30대 무왕(A.D. 600~641)대에 세운 왕실 사찰로 추정하고 있다.

    익산 제석사지에 대한 학술조사는 정비복원의 목적으로 기존의 조사 성과를 기초로 하여 2007년~2009년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금번 조사는 사역 중심부(9,100㎡)인 목탑지-금당지-강당지에 대한 전면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사찰의 규모 및 존재양상, 각 유구들의 축조방법을 밝혀내고, 더불어 익산 왕궁성과 관련된 왕실사찰로서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한다.

    아울러 이번 조사에서는 『觀世音應驗記』상에 기록된 제석사(帝釋寺)의 존재 및 화재로 인한 소실(燒失)에 대해 구체적인 확인작업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록이 사실로 판명될 경우에 『觀世音應驗記』상의“百濟武廣王遷都枳慕密地 新營精舍(백제 무광왕, 즉 무왕이 지모밀지(금마)로 천도하여 새로 정사(사찰)를 경영하였다)”라는 백제 무왕의 익산 천도의 역사적 사실성 확보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제석사지는 1993년에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 의한 시굴조사에서 1탑 1금당의 가람배치를 확인하였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제석사(帝釋寺)」銘 명문와·백제 당초문 암막새를 비롯한 7세기대 기와가 다량 출토되었다. 그리고 2003~2004년에 걸쳐 기존에 왕궁리 전와요지(傳瓦窯址)로 알려져 있었던 제석사지 북동편 지역에 대한 조사에서는 7세기 전반의 연화문 수막새·불에 탄 소조불상 및 악귀상·벽체편 등이 다수 출토되어 이곳이 제석사지의 건물폐기장임을 확인하였다.

    현재 제석사지는 사적지정면적(24,218㎡) 일대에 심초석이 노출된 목탑지와 추정 금당, 강당지를 포함하여 주변에 궁평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까지 정비를 위해 민가 이전 및 잡목 제거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